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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알고있니?

매국노 5인, 그리고 독립을 위해 애쓰신 다섯 분

by 이슈아빠 2024. 3. 1.

매년 돌아 오는 삼일절, 하지만 요즘 젊은 MZ 세대들은 그 의미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지 않은거 같습니다. 트위터(엑스)를 보면 정말 이해 안되는 글들이 많은데요. 오늘은 우리 나라를 팔아 먹은 대표적인 매국노 5인 (다섯놈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과 독립을 위해 애쓰신 수많은 분들 중 5분을 소개 드리려고 합니다. 

 

을사오적매국노들

목차

     

     

    주권을 잃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

     

    을사늑약, 정식 명칭으로는 "을사보호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조선)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넘기고, 일본이 조선의 외교를 대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상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게 상실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을사늑약은 총 5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한제국의 외교를 일본이 대행한다.
    2. 대한제국은 일본의 조언에 따라 외교 관련 고문을 임명한다.
    3. 대한제국은 일본의 승인 없이는 다른 국가와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
    4. 일본은 대한제국의 영토 보전과 왕실의 안전을 보장한다.
    5.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 문서 처리를 지원한다.

     

     


    매국노들 5인(을사오적) 

    1. 이완용 (1858-1926)
      •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정치인으로, 을사늑약 체결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당시 내각의 수반으로서, 그는 일본의 강압에 굴복하여 을사늑약에 서명함으로써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넘기고, 이로 인해 대한제국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완용의 이러한 행위는 그를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후세에 이르러 매국노로 규정되어 깊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2. 박제순 (1861-1950)
      • 박제순 역시 을사늑약 체결에 참여한 인물로, 당시 외무대신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요구에 응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포기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조선의 국권을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박제순의 행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큰 배신으로 여겨졌으며, 그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매국 행위의 대명사로 회자됩니다.
    3. 이지용 (1869-1932)
      • 을사늑약 서명자 중 한 명으로, 당시 법부대신이었습니다. 이지용은 일본과의 협상 과정에서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결정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손상시켰으며, 역사적으로 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4. 권중현 (1859-1913)
      • 권중현은 을사늑약에 서명한 인물로, 당시 교육부 대신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강요에 굴복하여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 넘기는 데 일조했습니다. 권중현의 행위는 나라의 미래와 주권을 일본의 이익에 판매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역사적으로 큰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5. 이근택 (1859-1927)
      • 이근택도 을사늑약 서명에 참여한 인물로, 당시 농상공부 대신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일본의 강제 보호국화 정책을 수용했습니다. 이근택의 결정은 대한제국의 국권 상실에 중대한 역할을 했으며, 그로 인해 그는 매국노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완용: 내각총리대신 박제순 : 참정대신 이지용 : 중추원 고문 권중현 : 중추원 고문 이근택 : 중추원 의장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모든 사진의 저작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다섯분

    • 유관순 (1902-1920)
      • 유관순 열사 3·1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일제 강점기 한국 독립 운동의 여성 영웅입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에 대한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아우내 장터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주도했습니다. 이 시위는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유관순 역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으며 순국했습니다. 그녀의 용기와 희생은 많은 한국인에게 독립 운동에 대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 안중근 (1879-1910)
      •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으로 유명한 독립 운동가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제 강점기 초기 조선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으며,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그를 사살함으로써 한국 독립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안중근은 이후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의 행동은 많은 독립 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 윤봉길 (1908-1932)
      • 윤봉길 의사는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 운동가로,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현재의 루쉰공원)에서 일어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일제의 심장부를 겨냥한 대담한 독립 운동 행위로,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독립 의지를 불태우는 한국인의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안창호 (1878-1938)
      • 안창호 지사는 도산 안창호로 잘 알려진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 사회운동가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설립하여 해외 독립 운동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안창호는 한국의 독립과 더불어 국민의 의식 개혁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철학과 리더십은 많은 독립 운동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 이봉창 (1900-1932)
      • 이봉창 의사는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이 행동은 1932년 1월 8일에 일어났으며,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봉창은 한국의 독립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으며, 그의 용기와 희생은 한국 독립 운동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안창호 지사 이봉창 의사
    고흥 류( )씨 순흥   안 ( )씨 파평 윤( )씨 순흥   안 ()씨 전주 이( )씨
    사진 및 자료 출처 : 나무위키 (모든 사진의 저작권)

     

     

     

     

    열사, 의사, 지사 구분법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을 '열사', '의사', '지사'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들의 활동, 희생의 정도, 그리고 독립 운동 내에서의 역할과 기여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호칭은 각각의 운동가가 보여준 애국심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며, 그들의 업적과 희생을 기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열사 (烈士) '열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독립 운동가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이들은 주로 무장 투쟁, 시위, 항거 등과 같이 직접적인 저항 활동을 통해 일제의 억압에 맞섰으며, 그 과정에서 생명을 희생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대표적인 예로, 3·1 운동과 같은 평화적 시위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일제의 탄압에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인물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 의사 (義士) '의사'는 조국의 독립이나 민족의 자주성을 위해 특별한 의거를 단행한 인물에게 붙는 칭호입니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행동을 통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입니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각각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상하이에서 폭탄 의거를 실행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들입니다.
    • 지사 (志士) '지사'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했으나, '열사'나 '의사'와 같이 명확한 의거나 희생을 통해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독립 운동의 이념을 실천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안창호 지사와 같이 독립운동의 조직적,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 교육과 계몽을 통해 민족의 의식을 높인 인물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지사들은 물리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사상적, 문화적 독립을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각 인물의 역할과 독립 운동 내에서의 위치,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산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독립 운동가들의 다양한 활동과 희생은 한국 독립운동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며, 이들을 기리는 칭호는 그들의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민족의 의지를 반영합니다.

     


     

    독립에 대한 맺음말

     

    우리의 오늘을 가능하게 한 순국선열과 독립 운동가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의 희생과 용기는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여러분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불굴의 정신, 안중근 의사의 대의를 위한 헌신, 윤봉길 의사의 용감한 행동, 안창호 지사의 굳건한 믿음, 이봉창 의사의 결단력과 같은 여러분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여러 독립운동가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자유를 누리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순국선열과 독립 운동가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히 편안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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